다른 한국기사를 모두 꺽어도 이창호가 남아있다면
그때부터 시작이다.
- 칭하오 9단 -
이창호 바둑기사는 한국의 전설적인 바둑 기사 중 한 명으로,
세계 바둑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바둑계에서 큰 영향을 미쳤고,
한국 바둑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전국대회와 국제대회에서 많은 우승을 차지하며, 바둑의 대가로서 자리잡았습니다.
기본정보
- 출생: 1975년 7월 29일 / 전주
- 바둑 입문: 11세에 한국 바둑 입단(입단 시점에 이미 바둑 천재로 알려져 있었음)
- 도약: 1991년에 한국기원 입단한 후, 1990년대 초부터 국내외 대회에서 수많은 우승 차지
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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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져 세계대회 우승횟수 17회로 역대 1위
메이져 세계대회 결승만 무려 28회 진출(역대 1위) -
국내 최연소 종합기전 타이틀 획득(1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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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연소 세계 종합기전 우승(16.5세 / 최연소 세계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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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연승(41연승), 국내 16개 기전 사이클링히트 달성(1994년, 제18기 기왕전 우승), 최다관왕 기록(13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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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최고승률 기록 88.24%(75승 10패, 1988년) - 기록을 세울 당시의 나이는 13세.
이 기록은 32년 후 신진서가 76승 10패를 달성하면서 경신함 -
그랜드슬램 달성(2003년, 제4회 춘란배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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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우승횟수 2위(141회) - 1위 조훈현 (16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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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승리횟수 2위(1897승) - 1위 조훈현 (1963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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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모든 메이저 세계대회에 결승 진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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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메이져 세계기전 3연패 - 2, 3, 4회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하였고 유일무이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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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연소 500승(18세 4개월) / 최연소 1000승(25세 2개월), / 최연소 1500승(35세 5개월)
주요 이벤트(1)
상하이 대첩
2005년 농심 신라면배 국가대항 연승전에서는 한국팀의 나머지 인원이 일찌감치
충격적인 광탈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한국팀에는 이창호 혼자만이,
중국과 일본팀에는 합이 다섯 명의 기사들이 남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사진상에서도 우승을 확신한 채 여유롭게 입장하는 중국기사들과 달리
비장하고 홀로 고독히 걸어 들어오는 이창호의 모습이 이 압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신문에서는 혼자 남은 이창호가 다섯 명을 몽땅 박살내고 우승컵을 한국팀에 가져다 줄 확률을 3%미만으로 계산하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오죽하면 당시 한국팀 단장인 김인 九단이 "우승은 역시 어려울 것 같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혼자 남은 이창호가 정말로 나머지 다섯 명을 몽땅 박살내 버리고
우승컵을 한국팀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창하오 9단이 '다른 한국 기사를 모두 꺾어도 이창호가 남아있다면, 그 때부터 시작이다.' 라는
말을 남긴 그 경기입니다.
주요 이벤트(2)
조훈현 9단과의 사제 대결
이창호 나이 15세로 조훈현과의 대결에서 연이어 승리하여 한국 최고의 다관왕을 차지하게 됩니다.
프로기사로 입단해도 빠르다는 소릴 듣는 나이에 이미 한국 프로기사의 정점에 선 것이었습니다.
3판을 내리 이기면서 스승을 꺾게 됩니다. 사제대결은 영화 '승부(2025)'로 제작되기도 하였습니다.
“맞아서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제자한테 빼앗기는 게 낫다. 내 시대가 백년 천년 가는 것도 아니고.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온 것뿐이다. 아내가 가운데서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창호는 원래 말이 없는데다가, 그런 날은 고개까지 푹 숙이고 있으니… 보통 천재는 반짝반짝 금방 눈에 띈다. 그런데 창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천재’다. 창호는 자기 바둑 수순도 잊어 먹는다. 세상에 그런 천재가 어디 있나. 게다가 창호는 당연히 치고 나가야 하는 수순인데 갑자기 하수처럼 물러난다. 난 어이가 없어 야단을 친다. 그러면 떠듬떠듬 말한다. ‘그렇게 하면 싸움이 붙고, 그러다가 아차하면 역전당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물러서면 2, 3집밖에 못 이기겠지만, 결코 지는 일은 없다’고.
맞다. 끝내기는 정상급 기사라면 누구나 잘한다. 하지만 창호는 반집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0.7집을 알고 그 수순을 밟아간다. 그래서 결국 한집을 만들어 낸다. 평범한 바둑 같은데 볼 건 다 본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한국 바둑의 정점에 서자 일본에서는 '일본기원과 바꾸더라도 이창호를 사고 싶다.'라는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의 최강 기사였던 조치훈 9단은 이창호와의 동양증권배 5번기 결승을 앞두고 조훈현에게 "제자한테 너무 무기력하게 지는 것 아닌가? 그래 가지고서 뭘 배우겠는가."라고 말했는데 "그럼 한번 둬 봐."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 뒤 벌어진 대국에서 조치훈 9단은 0-3으로 무릎을 꿇게 됩니다.
창호는 100번 중에 한번이라도 역전당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판을 크게 이길 수 있어도 그 수를 안 둬요. 창호에게 ‘왜 그 수를 안 뒀느냐'고 하면 ‘자기가 가는 길로 가면 100번 중의 100번을 반집이라도 이길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게 답이 될 수 있을 거예요.”
평가
중국에서는 이창호를 거의 신으로 모실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에게 지는 것은 한국에게 지는 것이 아니다. 신은 인간보다 위대함을 알려줄 뿐"이라고
칭송할 정도로 전세계 바둑계는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습니다.
이창호 기사는 한국 바둑의 거장이자 세계 바둑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로,
그의 업적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고,
바둑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